공직사회에서 민원실 근무는 인기가 별로 없다. 수사 결과에 불만을 품은 악성 민원인이 고성을 지르고 욕설까지 뱉곤 하는 경찰서나 검찰청사 민원실은 더욱 기피 부서로 꼽힌다.
  다들 꺼리는 부서이지만 서울동부지검 종합민원실에는 한 명의 민원인을 위해 개인 시간을 들여 1만장이 넘는 사건기록을 복사해주는가 하면, 장애인 민원인을 지하철역까지 배웅해주는 '친절왕' 수사관이 있다.
  권은구(44) 수사관을 인터뷰하려 23일 서울 광진구 동부지검 종합민원실 문을 열자, 산더미처럼 쌓인 사건기록을 복사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권 수사관은 사건기록 열람·등사 담당이다. 그는 "민원인이 '복사 가능한 모든 기록을 달라'고 요청하면 1만장 넘게 복사해야 할 때가 있어 항상 바쁘다"면서 "며칠 뒤에 오시라고 한 다음 개인 시간을 할애해 준비해놓는다"고 설명했다.
  동부지검에는 올 한 해 동안 민원인 59명이 "권 수사관에게 감사하다"며 '그린카드'(친절감사카드)를 제출했다. 2위를 차지한 다른 직원이 받은 그린카드보다 2배나 많다.
  민원인들이 낸 카드에는 "한국에서 이렇게 친절한 사람은 처음 봤다", "이런 직원만 있으면 검찰 개혁이 일어날 듯하다", "개인적으로 용돈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등 극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러한 반응의 비결을 묻자 권 수사관은 "민원인은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한다"면서 "나도 언제든지 검찰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민원인을 상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해드린 건 별로 없다"면서 "민원을 공감하며 들어드린 다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데 이 문서를 가지고 여기로 가시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설명해드릴 뿐"이라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민원인을 묻자 권 수사관은 한 70대 남성 장애인을 꼽았다.
    그는 "휠체어를 끄는 데다 말씀까지 잘 못 하시는 분이 보조인도 없이 검찰청에 오셨더라"면서 "민원 해결 후 지하철역까지 모셔다드렸더니 영화 '러브 액추얼리' 장면처럼 스케치북에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적어 보여주셨다. 참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민원실 근무가 피로하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감정노동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악성 민원인이 오더라도 나까지 흥분하지 않고 잘 들어드리면 결국 차분히 돌아가시더라"라고 답했다.            

취재 / 김학경 기자  pointan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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